볕이 잘 드는 날이었다. 막 깨어난 꽃잎들이 옅은 산들바람에 흐드러지고 그 사이로 비단 옷자락이 나풀거리는 것을 눈으로 쫓아가면 끝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햇빛을 머리 위에 두고도 그늘 하나 없이 맑게 웃으며 손짓 했다. 하얀 손이 흔들리면 설핏 꽃향기가 나는 듯 했고 말간 웃음소리가 들리면 바람이 지저귀는 것 같았다.
“봄이라 하나 아직 날이 찹니다. 그대.”
“아, 전하. 이걸 봐요. 벌써 꽃이 다 피었습니다.”
서화정이 건청궁의 바로 뒤에 있어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그녀는 날이 좋은 날이면 서화정의 정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옆에 앉아 그녀가 가리키는 꽃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다보니 어느새 시선은 웃음꽃이 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아아, 그대는 어찌 이리도.
“전하?”
너무 오래 바라 보았는 지 의문을 가지고 올려보는 눈과 마주쳤다. 그 투명한 눈동자를 응시하다 품 안에서 준비한 선물을 꺼내든 것은 가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것은 맞으나, 지금 주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푸른 보석이 네 눈동자에 비쳤다.
“그건 제 선물인가요?”
“지나가는 길에, 그대와 잘 어울릴 듯 하여.”
딸랑, 방울이 달린 것도 아니었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가지런히 자리잡은 꽃잎이 하얗게 빛났다. 그것이 어쩐지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 없었다.
***
“여의관이, 생을 달리 하였습니다.”
아, 그대는 어찌 이리도 잔인한가. 남은 것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마셨을 잔 뿐이었다. 내가 너무 어리게 굴었는가. 그대와 함께라면 황제가 되지 않아도 좋다, 그리 어물거린 탓인가. 행복을 원했다면, 변치 않을 평화를 기대 했다면, 당장의 피비린내를 외면해선 아니 되었는데. 이미 잃고난 뒤의 고통이 뼈저리게 깊어 도리어 머릿 속이 냉정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젠 마냥 약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그대를 죽인 자라 할지라도 끝까지 이용하여, 그리하여 나는 이 나라의 황제가 되겠다.
***
여름 하늘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그 아래서 그대를 품에 안고 나는.
그대가 이곳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안다. 그녀는 죽었으니까. 공식적인 가족이 없는 탓에 너를 묻어준 것이 나다. 나만큼은, 너를 착각할 수 없다. 하지만…그럼에도 결국 그대에게 이끌리는 이유는 무엇이지? 왜 나는 그대를 보며 이 여름에 하얀 꽃향기를 맡고 바람의 지저귐을 듣는가.
…허나 이젠 그때와 달랐다. 그대를 잃은 그 여름에 이미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잃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황제에게 바칠 마지막 술은 그대가 남긴 마지막 잔으로 행해지리라. 그러고 나면…… 나는. 난, 이제 그대를.
***
매는 가장 빠른 새로 꼽히지만 사실 그렇게 빠르지 않다.
매가 가장 빠른 시기는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급강하를 할 때이며, 그 모습은 마치 추락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
제3장 추락하는 매